작년에는 청구서가 매달 똑같았습니다. 사람 수 곱하기 좌석 요금. 예산 짜기 쉬웠죠.
올해는 다릅니다. 같은 도구인데 이번 달은 40만 원, 다음 달은 92만 원. 누가 뭘 더 쓴 건지 물어보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결제 내역을 열어 보면 알지도 못했던 AI 서비스 세 개가 개인 카드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AI 구독 비용 관리는 이제 IT팀이 아니라 팀 리더와 경영지원의 일이 됐습니다. 이 글은 절약법이 아니라, 지출을 보이게 만드는 4단계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나 — 좌석에서 크레딧으로
2026년 들어 글로벌 SaaS 기업들이 가격 구조를 바꿨습니다. 기존의 사용자 수 중심 구독에 AI 기능을 별도 상품으로 분리하거나, 사용량(크레딧) 기반 과금을 얹는 방식입니다. 국내 언론도 "사용자 수 다음은 크레딧"이라며 달라진 SaaS 청구서를 짚고 있습니다.
그 결과 SaaS 지출은 이제 한 줄짜리 고정비가 아니라, 구독료와 AI 이용료를 따로 관리해야 하는 이중 구조가 됐습니다. 이걸 통칭해 AI TCO(총소유비용)라고 부릅니다 — 눈에 보이는 구독료 바깥의 비용까지 합쳐서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변화가 예산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합니다.
| 좌석 과금 | 크레딧 과금 | |
|---|---|---|
| 예측 가능성 | 높음 (인원 × 요금) | 낮음 (사용량에 비례) |
| 비용 증가 원인 | 채용 | 활용도 상승 |
| 통제 방법 | 좌석 회수 | 상한·알람 설정 |
| 역설 | — | 잘 쓸수록 비싸진다 |
마지막 줄이 핵심입니다. AI 도입을 성공적으로 한 팀일수록 청구서가 커집니다. 이건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비용인데, 대비가 없으면 성공한 팀이 비난받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비용이 새는 네 개의 구멍
flowchart TD
A([월 AI 지출]) --> B[① 흩어진 결제]
A --> C[② 중복 구독]
A --> D[③ 섀도 AI]
A --> E[④ 유휴 좌석]
B --> F{{집계 자체가 불가}}
C --> G{{같은 일을 하는 도구 3개}}
D --> H{{쓰는 줄도 모르는 비용}}
E --> I{{퇴사자·비활성 계정}}
① 흩어진 결제. 법인카드, 팀장 개인카드, 부서 공용 계정, 개발자 개인 계정. 결제 수단이 나뉘어 있으면 전사 AI 지출을 합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대부분 조직의 진짜 문제는 비싸다는 게 아니라 얼마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② 중복 구독. 마케팅팀은 A를, 기획팀은 B를, 대표는 C를 씁니다. 셋 다 문서 요약과 이미지 생성을 합니다. 각자 합리적으로 골랐지만 회사 전체로는 삼중 지불입니다.
③ 섀도 AI. 가장 안 보이는 구멍입니다. 이미 쓰고 있는 협업 도구·CRM·문서 도구 안에 AI 기능이 애드온으로 들어와 있고, 어느 순간 청구서에 붙습니다. 업계에서는 AI 지출의 상당 부분이 신규 AI 도구가 아니라 기존 SaaS 내부에 숨어 있다고 봅니다(벤더 조사 기준이라 수치는 편차가 있습니다). 별도 계약이 아니라 기존 계약의 증분이라 승인 절차도 거치지 않습니다.
④ 유휴 좌석. 퇴사자 계정, 프로젝트 종료 후 남은 좌석, 한 번 써보고 안 쓰는 계정. 좌석 과금 시절부터 있던 고전적인 누수인데, AI 도구는 좌석 단가가 높아 타격이 큽니다.
4단계 실행
1단계 — 모으기 (이번 주)
목표는 절감이 아니라 한 장에 다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 최근 3개월 카드 명세를 뽑아 AI/SaaS 관련 결제를 전부 추출합니다.
- 검색 키워드:
AI,GPT,Claude,Copilot,Assistant,credits,API, 그리고 해외 결제 내역 전체. - 개인카드 청구도 반드시 포함합니다. 팀원에게 "혼내려는 게 아니라 예산을 정상화하려는 것"이라고 먼저 말하세요. 이 한마디가 없으면 목록이 절반만 모입니다.
- 결과물: 도구명 / 월 금액 / 결제 수단 / 실사용자 — 네 칸짜리 표 하나.
2단계 — 분류하기
모은 목록을 세 그룹으로 나눕니다.
- 필수: 없으면 업무가 멈추는 것. 보통 전체의 20~30%입니다.
- 대체 가능: 다른 도구나 기존 구독의 기능으로 커버되는 것.
- 정체불명: 왜 결제되는지 아무도 설명 못 하는 것. 이 그룹이 가장 큽니다.
동시에 과금 방식을 표시하세요(좌석 / 크레딧 / 혼합). 크레딧 항목은 다음 단계에서 다르게 다뤄야 합니다.
3단계 — 잘라내기
- 정체불명은 일단 해지하고 2주간 불만이 나오는지 봅니다. 대부분 안 나옵니다. (백업·데이터 내보내기는 해지 전에)
- 중복은 하나로 통합하되, 무조건 통합하지는 마세요. 팀별 업무 성격이 다르면 억지 통합은 생산성 비용으로 되돌아옵니다.
- 유휴 좌석 회수 — 최근 30일 미접속 계정부터.
- 크레딧 항목은 해지가 아니라 상한 설정. 대부분의 서비스가 월 사용 상한과 알람을 제공합니다. 안 켜져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4단계 — 규칙 만들기
한 번 정리하면 6개월 뒤 원상복구됩니다. 규칙이 있어야 유지됩니다.
- 단일 결제 수단 원칙. 신규 AI 도구는 지정된 카드로만. 예외는 사전 승인.
- 도입 신청 한 줄 양식. 도구명 / 목적 / 대체 검토한 것 / 월 예상 비용 / 다루는 데이터 등급. 다섯 칸이면 충분합니다.
- 분기 점검 30분. 표를 열고 세 가지만 봅니다. 늘어난 항목, 안 쓰는 항목, 새로 생긴 항목.
- 크레딧 예산 상한. 팀별 월 상한을 정하고, 초과 시 자동 알람 → 승인 라인.
흔한 실수 두 가지
"전부 하나로 통합하자." 통합은 협상력에는 좋지만 업무 적합성에는 나쁠 수 있습니다. 필수 그룹은 통합보다 안정성이 우선입니다.
"AI 도구 사용 금지."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금지하면 지출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개인카드로 숨습니다. 섀도 AI의 절반은 금지 정책이 만듭니다. 통제의 목적은 차단이 아니라 가시성입니다.
지출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협상도 해지도 아닙니다. 매달 누가 얼마를 왜 쓰는지 한 장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보이기 시작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정리됩니다.